백수생활을 시작한지도 언 2개월이 흘렀다. 미래에 대한 걱정이 간혹 들기는 하지만 난 현실을 즐기려 노력한다. 한동안은 게임폐인처럼 지내보기도 하고 주정뱅이처럼 낮술을 마시러 다니기도 했다.
 
 세상에 올바른 것은 무엇인가? 나같은 헤비스모커에 술꾼에 게임폐인은 올바르지 않은 것인가? 사람들은 어떠한 관념 속에 빠져 있다. 무엇인가가 옳다는 착각에 빠져서 그곳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그것은 집단적인 착시현상이다. 모든 것을 자본적인 논리와 기준에 의거해서 판단함으로 발생하는 착시현상이다.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해서 도덕적인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해서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인가?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가진 자들의 논리에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왜 흡연을 야만적인 행동으로 매도하는가? 야만의 상태에 있는 이들은 흡연을 하지 않았다. 야만의 상태라면 그 환각의 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그들은 야만적이고 본능적인 삶을 살기 때문에 그 고차원적인 환각이라는 상태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흡연을 야만적인 행동으로 매도하는 것은 다 가진 자들의 논리이다. 담배를 팔아 치우는 곳은 분명 국가이다. 하지만 그 국가라는 거대권력은 항상 마녀사냥의 대상이 필요하다. 그들의 돈을 합당한 논리로 좀더 쉽게 갈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러한 것들은 매우 효율적이다. 그들은 계속 흡연자들을 탄압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캠페인이라면서 금연홍보를 하고 흡연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매우 비매너적인 행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생각해 보라 사람이라는 것이 그렇다. 일종의 세뇌라 볼 수 있는데 평범한 사람을 놓고 여기저기에서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면 그 사람은 진짜로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다. 모든 이들이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라 판단할테니... 금연홍보는 이와 유사하다. 그 피해에 대한 별 자각이 없는 이들 까지도 그것을 신경쓰도록 만들고 자각하게 만든다. 피해의식에 휩쌓이게 만든다. 그 실례로 난 사람이 붐비는 곳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자신이 소심해서 인지 은근히 그러한 것들은 신경이 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젠가 담배에 불도 붙이지 않은 채 입에 담배를 물고(담배 필 수 있는 한산한 장소를 물색하며) 붐비는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헌데 그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에서 연기가 나는 모양이다. 몇몇의 여인네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손을 휘저으며 콜록거리기 까지 한다. 가끔 그런 이들을 접하면 짜증이 밀려오기는 난 단순히 그런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것은 거대권력 국가의 횡포이다. 항상 마녀사냥의 대상을 물색한다. 자신들이 하며 로멘스지만 남들이 하면 불법 혹은 불륜이 된다. 돈을 가진 사람이 띠동갑의 나이와 결혼하면 행복한 결혼을 축하해 주지만 내가 띠동갑의 여자와 만나 관계를 맺으면 원조교제가 되고 적발이 된다면 나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사회에서 매장되어 버린다. 도대체 그 둘의 차이가 무엇인가? 비정규직와 정규직의 차이점인가?
 
 술만 해도 그러하다. 후배녀석과 낮술을 기울이는데 후배녀석이 그런 말을 했다. "형 요즘애들한테는 이렇게 낮술 먹는게 엉청난 일탈이예요. 평생에 방황하면서 한 번 할까 말까 한 그런 일탈...." 이러한 모든 것들은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의 논리 안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이 현실에서 누군가의 약점을 잡는다는 것은 경쟁자를 제거하기 매우 효율적이다.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이렇게 살아가지 말자. 모든 것을 돈으로 판단하지 말지어다. 모든 이들을 이기려 하지 말자. 비극저인 자본과 권력의 논리에 휩쌓이지 말지어다. 그렇다면 좀더 밝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눈 앞에 이익에 눈이 멀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의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그런 사회 그런 공동체를 꿈꾸며 나의 백수생활은 계속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