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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리도 줄세우는 것을 좋아할까? 줄세우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모든 본질을 잃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 보다 몇 등을 했느냐가 중요하고, 어떤 목표와 희망을 가지고 전공을 선택하고 대학에 들어갔느냐 보다는 얼마나 좋은 대학에 들어갔느냐가 중요하다. 적성에 맞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느냐 보다는 얼마나 힘 안 들이고 높은 연봉을 받느냐가 중요하다. 

사람은 많고 땅덩어리를 좁고 그러니 경쟁은 치열하고 게다가 철저한 승자독식의 사회. 승자가 되지 못하면 영원한 패배자로 쓰레기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 살다 보니 우리는 길고 긴 줄에 맨 앞에 아니 최소한 앞 쪽 언저리에 라서 줄을 서려 집착할 수 밖에 없다. 

헌데 그로써 우리 사회는 본질을 잃었다. 인간의 공부를 하고 교육을 받는 이유는 건전한 사회의 구성원을 만들어 내기 위함인데, 우리는 단순히 몇 점의 점수를 더 획득하기 위해서 공부한다. 그리고 소위 명문이라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한다. 실제로 필요하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직장과 고액연봉을 위해서 영어를 공부하고 자격증에 몰두한다. 

내가 이런 불만들을 늘어 놓으면 사회를 욕하면, 어떤 이들은 어느새 자이언트의 조필연으로 빙의한다. 

"그런 말들은 패배자들이 승자를 시기하는 말투에 불과해."

본질을 잃었느니, 사회가 썩었느니 현실을 바꿔야 하느니 그런 말들. 어쩌면 수많은 패배자가 승자를 시기하는 그런 말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과연 자기자신이 승자인지 패자인지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누가 줄의 맨 앞에 설 지가 이미 정해져 있다. 누군가는 이미 맨 앞 줄에 서서 있고 그 뒷 줄의 조금이라도 앞에 가까운 자리를 차지하려고 피튀기게 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난 절대 승자가 될 수 없다. 영원한 승자들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승자들이 만들어 놓은 룰 안에서 나는 영원한 패배자이다. 설령 운이 좋아 승자들의 부류에 들어 갈 수 있다고 하여도 나로 인해서 수많은 패배자를 만든 것이 되니 전혀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승자도 패배자도 없는 사회. 물론 그런 사회는 불가능 하겠지만, 패배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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