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록 강매

시사 2009. 12. 3. 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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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할 무렵 학과 사무실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확실치는 않다. 학과 사무실인지 아니면 총동문회의 사무실인지는... 어쨌든 확실한 것은 "선배님 안녕하세요? 지금 동문명부를 작성 중이어서...." 와 같은 말로 통화는 시작됐다.

난 단지 그 통화를 통해 나의 핸드폰 번호며 현재 거주 하고 있는 주소, 이메일 주소 따위 등을 알려 줬을 뿐이다.

그리고 얼마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

"드디어 동문록이 출간되서 선배님 주소지로 보내드릴까 하는데 어떠세요?"

"네, 좋을데로 하세요."

두번째 통화는 이리도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하지만 나의 모교가 나의 사랑하는 모교가 나의 감정을 건드렸다. 얼마후 배달되어 온 택배박스를 열었을 때, 내 이름과 출신학과명까지 기재된 지로용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얼마 안되는 돈. 모교와 후배들을 위해서 지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기분의 문제이다. 가격에 대해서 전혀 전해들은 바도 없고 어떠한 취지로 그 돈을 징수하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이름까지 인쇄되어 있는 지로용지보다는 기부금 신청서 같은 것이 동봉되어 왔다면 이보다 불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졸업생을 상대로 몇 푼 안되는 돈을 걷어 들이기 위해서 물건을 강매한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난 불쾌한 감정에 그 돈을 납부하지도 않았고, 지금 현재도 전혀 납부할 의향이 없다. 내 감정이 수그러지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동문록 수령 이후 총동문회에서 걸려오는 독촉전화 때문이다.

내가 무슨 빚이라도 졌는가? 내가 물건을 훔치기라도 했는가?

독촉전화에 이어 문자메시지 그리고 이메일까지...

아는 지인의 경우 연락이 안되자, 고향집에까지 전화를 해서 독촉전화를 했다고 한다.

반송을 요청해서 절차나 방법은 안내해 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은 모든 취지와 가격에 대한 설명을 고지 했고, 이에 내가 구매의사를 밝혀서 배송해 준 것이니 무조건 돈을 납부하라는 식의 대응만 있을 뿐이다.

혹은 학교와 후배들을 위해서 좋은 취지로 쓰이는 것이니 지불하라는 협박 아닌 협박만이 오갈 뿐이었다.

동문회에서 도대체 왜 이런 바보짓을 하는 것인가? 그것도 졸업생을 상대로 말이다. 장기적인 안목이라고는 전혀 없어 보인다. 고작 그 몇 만원의 돈 때문에 동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미래에 더 많은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생각을 왜 못하는 것일까?

'빨리빨리' 와 '대충대충' 의 한국문화가 이런 것인가? 장기적이고 치밀한 계획도 없고 근시안적이고 내실없는 일을 벌려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막무가네식의 사업은 사라져야 한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 결과적으로 이러한 동문록강매(?)는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누워서 침뱉기에 불과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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