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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만난 후배 녀석과의 술자리가 꽤나 길어졌다. 실제 술자리는 1인분에 3000원 하는 싸구려 돼지고기에 소주 두 병이 고작이었지만, 이상하게 술만 먹으면 걷고 싶은 충동이 일어라는지라 경희대를 거쳐 고려대 앞 까지 걸어가서는 또 다른 친구녀석을 불러내 허영만 만화 '식객' 에 등장했다는 유명한 멸치국수집을 찾아가 국수 한 그릇을 염치없게 불러낸 친구에게 얻어 먹고 다시 경희대를 거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후배 녀석과 헤어지고 골목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가는데, 구멍가게 밖에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녀석 한 명이 배회하고 있고 안쪽에는 모두 친구로 보이는 고등학생 녀석들이 눈치를 살피며 물건을 고르고 있는게 보였다. 녀석들의 행동이 무언가 자연스럽지 않은 듯 느껴져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난 아무 생각없이 그곳을 그렇게 지나왔다.

특히 그 가게는 주인할머니가 가게에 기거하시며 운영하는 가게인데다가 공식적으로 24시간 동안 장사를 하지는 않지만, 큰 길의 편의점까지 나가기 귀찮은 동네 하숙생과 자취생들이 늦은 밤이나 새벽이면 물건을 사러가는 그런 곳이기에 주인할머니도 굳이 가게 문을 잠그지 않고 장사를 하는 그런 곳이기에 별다른 생각없이 의심스러운 녀석들을 뒤로 하고 가게를 지나왔다.

그런데 가게를 지나 몇 걸음이나 갔을까? "저 놈들 잡아라!"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몇 녀석이 내 뒤에서 시끄럽게 달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의심스러웠던 그 녀석들이었다.

순간 난 고민에 빠져 버렸다.
 
'저 녀석들을 잡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며 뒤를 돌아 봤을 때,

'세 명이다. 세 명을 내가 상대할 수 있을까? 한 놈이라도 붙잡아야 되나?'

내가 그렇게 갈등하고 있는 사이, 손에 과자봉지를 쥔 세 녀석이 나를 힐끗 쳐다 보고는 빠르게 지나쳐 갔다.

뒤따라 주인할머니의 아들인 아저씨가 맨발로 뛰어 나와 "혹시 애들 서너명 지나가는거 보셨어요?" 라 물었다. 저 쪽으로 세 녀석이 달려 갔다고 말한 뒤 그렇게 그곳을 지나왔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며,

'녀석들은 세 명이었어. 나로써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게다가 철없는 고딩녀석들이 어떤 짓을 저지를 수도 알 수 없는 노릇이잖아.'

라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은 나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해 보려 했다. 하지만 무엇인가 가슴 속이 답답하다. 맨발로 뛰어 나온 주인아저씨의 모습이 떠오르고 일종의 죄책감 마저도 든다.

철없는 녀석들. 분명 그 녀석들이 훔친 물건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손에 든 과자 몇 봉지가 전부였으니까. 하지만 화가 난다. 그 녀석들로 인해 나자신이 시험에 빠졌다는 것이 화가 난다.

인간은 고작 이런 존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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