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출생과유년시절

2.왜? (만능인 Leonardo da Vinci)

3.예술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4.과학자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5.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

6.체념 혹은 오만
본 문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
후에 레오라르도는 로첸초의 아들로 교황이 된 레오 10세를 따라 로마로 거처를 옮긴 교황의 동생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초청을 받고 로마로 간다. 허나 레오나르도의 보호자 역할을 하던 줄리아노가 죽어 버린다. 이후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의 초대를 받고 이탈리아를 떠나 프랑스로 간다. 프랑수아 1세는 보호자라기보다는 레오나르도를 좋아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초대했고, 남프랑스의 앙부아즈 교외에 있는 클루 성을 레오나르도에게 제공한다. 게다가 생활비나 그 밖의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을 만큼의 충분한 연금도 주었다. 게다가 주문은 일절하지 않았다. 그 당시 레오나로드는 64세의 고령이었기에 여러 나라를 떠돌아다기도 힘겨운 나이였기에 프랑수아 1세의 그러한 제의는 아주 기쁜 것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1519년 5월, 앙부아즈에서의 편안하고 조용한 여생은 3년만에 끝나버리고, 레오나르도는 67년의 생을 마친다. 레오나르도는 생 플로랑탱 교회에 매장되었다고 하는데, 얼마 후 전란 와중에 교회가 파괴되어 유해의 행방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레오라르도는 프랑수아 1세의 호의가 무척 고마웠는지, 그때까지 어디에나 갖고 다니던 ‘모나리자’ 를 왕에게 준다는 유언을 남긴다.
*체념 혹은 오만
끝임없는 호기심을 갖기를 원한다. 500년 르네상스의 선각자였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이 항상 ‘왜’ 라고 질문하고 탐구할 수 있는 인간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우리는 그와 같은 호기심을 가질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너무 많은 것이 알려져 있고 너무 많은 것이 정체되어서 더 이상 획기적인 것을 찾기는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원본 : 우리들이르네상스를생각할때면먼저떠올리는사람이레오라르도다빈치.doc
URL : http://www.happycampus.com/report/view.hcam?no=3605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