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ordano Bruno의 사상

인문 2007. 11. 16. 03:08




Giordano Bruno (1548∼1600)

사 상

(1) 범신론

(2) 우주에 대한 새로운 비젼 ; 우주의 무한성

(3) 지동설에 대하여

(4) 기억술

(5) 영향



사 상

(1) 범신론

일체를 지배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원리를 브루노는 신(神)이라 불렀다. 그러므로 브루노에 의하면 신은 초월적인 위치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세계 속에서 세계 전체와 그 모든 부분에 대해서 활력적인 원리로서 작용한다. 세계의 무한성은 신의 무한성과 양립될 수 없고 양자가 일치하든가 아니면 하나가 유한해야 한다. 브루노는 단호하게 전자의 길을 택한다.


"우리는 태양광채 속에서 그리고 대자연의 품속에서 싹트는 만물의 아름다움 속에서 신을 발견 한다.... 광대한 천계에서 빛을 발하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면서 신을 찾는다."


이것이 신과 자연을 일치시키는 브루노의 범신론(Pqntheismus)이다. 범신론은 이미 고대부터 나타난 사상이다.

이러한 범신론은 신과 세계 사이에 선을 긋고 세계를 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단절시키는 기독교적인 세계관에 대한 반발이며(철학적으로), 신과 세계는 어떤 방식으로이든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신과 세계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점에서 범신론은 거의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나타낸다.

브루노는 모든 사물에 작용하여 생기를 주는 하나의 통일성 속에 사물의 근거를 찾음으로써 질료와 형상이라는 이원론을 극복하려한다. 즉 브루노는 현실을 포함하는 모든 세계의 근거에 근본적으로 하나의 통일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그는 제시하려했다.

이러한 통일성은 질료와 형상의 이원론적 구분에 앞서서 존재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사물의 실체를 새로운 의미로 파악한다.

브루노에게 있어서 결국 신의 존재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질료와 형상이 구분되고 질료없는 제 1형상이 신으로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브루노의 철학에서는 이러한 이원론이 극복되고 형상은 질료속에 항상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은 세계의 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 포함되는 세계의 혼, 다시 말하면 세계의 영혼으로서 외에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브루노의 범신론은 그의 철학이 일관되게 관철된다면 무신론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브루노의 범신론은 동향인이며 역시 27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던 캄파넬라 (Campanella, 1568∼ 1639)에 계승된다. 그러나 브루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철학자는 스피노자라 할 수 있다.


(2) 우주에 대한 새로운 비젼; 우주의 무한성

코페르니쿠스가 발견한 결과를 근거로 브루노는 우주의 무한성을 철학적으로 제시한다. 새로운 근세 자연 과학에 기초를 두는 브루노의 자연 철학적인 우주관은 중세의 이념에서 용납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르네상스 시기가 되면서 자연탐구가 신학에서 독자화되었지만 완전히 분리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브루노는 우주의 무한성을 다룬 그의 주저 《원인, 원리 및 일자에 대하여》에서 신학적인 독단에서 벗어나 자연과학적인 개념을 근거로 우주를 파악하고 해석하였다.

브루노에 의하면 우주는 한계도 없고 중심점도 없는 무한한 질료이다. 브루노는 우주의 유한성을 다음괴 같은 이유에서 부정한다.

① 우주가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장에 따라 천체로 파악되고 장소의 개념이 그 것을 포괄하는 물체와의 연관에 따라 규정된다면 우주는 그것이 포괄되는 어떤 것을 갖고 있 지 않기 때문에 장소가 없다.

② 우주의 한계점에 신이 있고, 신이 모든 것의 위치라고 한다면 어떻게 비물질적인 존재가 물 질적인 세계의 위치가 될 수 있는가가 이해되지 않는다.

③ 하나의 한계가 있고, 그 한계밖에는 무가 존재한다는 상상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한계 밖으로 내밀어진 손이나 던져진 돌멩이는 공간 속에 있지 않고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④ 장소를 포괄적인 물체, 즉 가장 바깥에 있는 천체와의 관계에서 규정한다고 하면 가장 외면 적인 천체의 정의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것으로 다른 것으로 포괄되지 않기 때문이다.

⑤ 가장 외면적인 천체밖에 무가 존재한다면 이 무는 안으로는 한계선을 가지나 밖으로는 한계 선이 없다. 그것은 상상될 수없다.

⑥ 우주가 존재하는 공간이 무에 의해서 포괄된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세계밖으로 무수한 세계 가 존재하기 때문에 우주는 전체적으로 무한하다.

결국 브루노는 우주의 무한성을 바탕으로 우주의 동적인 동일성과 셰게의 영원성을 결합시켰다. 세계는 영원하다. 왜냐하면 개별자는 변화 무쌍한 데 반해 전체로서의 우주는 유일한 존재자로써 불멸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동적인 통일성을 갖는다.

왜냐하면 우주 전체는 커다란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를 형성하면서 하나의 유일한 원리에 의하여 지배되고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3) 지동설에 대하여

피치노의 De Vita Coelitus Comparanda에 나오는 마술에 관한 문장에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에 대한 브루노의 생각은 그의 옥스포드 대학 강의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브루노는 피치노의 책에 대해 여러번 들었고, 그 또한 코페르니쿠스의 견해를 지지했다.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들에 맞서 그는 La Cena de le Ceneri에서 지동설을 옹호했고, 코페르니쿠스를 "단지 수학자일뿐"이라고 묘사했다. 브루노에게 있어서 지동설은 보편적인 생명체에 대한 이집트 철학을 확신하게 했다. 그는 또한 헤르메스의 논문속에서 자신의 가장 독특한 학설을 반복했다. 그것은 바로 "자연에는 죽음이 없고,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을 수용한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수학 논쟁에 의존하지 않았고, 반대로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가 단지 수학자에 불과하다고 경멸했으며,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발견에 대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피상적 인물이라 간주했다. 브루노는 항상 수학을 반대했다. 그 자신이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에 대해 어느 정도 과학적 지식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동적인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 대항하여 코페르니쿠스의 학설을 옹호한 것은 수학적 배경이 아닌 애니미즘적이고 마술적 배경에서 연유한 것이다. 사실 다른 작품들 속에서 태양에 대한 글을 비교해보면, 브루노에게 있어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은 이집트 철학과 종교로 회귀하는 일종의 천상계의 전조였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학파의 철학과 종교를 브루노의 종교와 철학-브루노는 이 두가지를 구별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았다-과 비교하여 보면 모두 죽은 것이고, 무미건조하며, 또는 현학적인 것의 상징이었다.



(4) 기억술

브루노가 남긴 것 중에서 그 자신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 것은 기억술에 있어서 광범위한 상상력의 훈련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헤르메스의 부활에도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르네상스의 전통을 계승해 나갔는데, 그 이유는 헤르메스 지식의 종교적 경험이 자신의 마음과 기억속에 우주를 반영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헤르메스주의자들은 그 자신들이 이러한 일들을 할 수 있다고 믿었는 데,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神)이 있어서 우주의 저쪽에 있는 신(神)의 마음을 반영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브루노에게 있어서 세계를 반영하는 마술같은

기억술을 게발하는 것은 사람들의 인품이나 인격을 수행하는 기술이 되었다. 마술적인 측면이 무시되거나 인정되어 지더라도 내적세게에 대한 브루노의 과감한 탐구는 심리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다.


(5) 영향

브루노의 철학은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적 사고의 정점으로서 근대 부르주아 철학의 발생을 본질적으로 촉진시켰고, 영국과 프랑스의 유물론자들은 베이컨과 브루노의 유물론적 견해를 더욱 확장, 발전시켰으며, 이로써 그들은 물활론적 자연관의 잔재로부터 벗어났다. 반면에 라이프니츠는 브루노의 단자론의 '만유정신설'적 요소를 수용하였고, 스피노자는 무한 실체와 다양한 유한사물의 통일이라는 이념을 언급했다.

브루노에 의해 시작된 오성과 이성의 구별, 그리고 그의 변증법에 대한 실마리 등은 독일 고전 철학의 사고, 특히 셸링의 동일철학(Identitatsphilosophie)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또한 그의 우주관은 1619년에 또 다시 진리 때문에 화형당한 바니니(Vanini, 1584∼1639)에 계승되며, 브루노의 범신론은 동향인이며 역시 27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던 캄파넬라(Campanella, 1568∼ 1639)에 계승된다. 그러나 브루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철학자는 스피노자라 할 수 있다.

출처 : 이범수의 이탈리아 http://my.netian.com/~chic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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