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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mbattista Vico (1668∼1744)

사상

(1) 데카르트 사상의 비판

(2) 역사에 대한 이해

(3) 역사순환론

(4) 신의 섭리

(5) 언어와 신화

(6) Vico와 Scienza Nuova의 영향



사 상

(1) 데카르트 사상의 비판

Vico 의 사상은 데카르트의 사상을 비판하는데서 비롯된다. 즉 Vico는 데카르트의 철학의 출발점인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에 대해서 "진리는 창조하는 것과 동일하다(Verum ipsum factum)"는 인식론의 원리를 제시함으로써 데카르트가 사고와 존재를 일치시킨 일에 대하여 진리와 창조를 일치시켜 역사철학의 참다운 길을 열었다. Vico는 이와같은 데카르트의 견해에 대하여 "진리와 사실은 환위된다(Verum et factun con-vertuntur)"라는 교설로써 대결하였다. 그에 의하면,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의 Sum 즉 존재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순간에 생각의 주체자로써 없을 수 없는 "나"의 존재를 의미할 뿐, 그 이외의 자연이나

세 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은 못된다. 그러므로 데카르트가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한 말은 생각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그 발견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논리에서 Vico는 주장한다.

인 간은 인간에 의해서 창조된 것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지 피조물로써 조물주의 세계는 인간 인식밖의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실을 진리로서 인식할 수 있는 조건은 인식의 주체가 주체의 객체를 만들어야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은 신(神)만이 인식할 수 있고, 수학은 인간만이 인식할 수 있다.

(2) 역사에 대한 이해

Vico 에 의하면 역사란 인간이 언어, 관습, 법률, 정치제도 등의 체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써 인간사회와 제도의 형성과 발전의 역사, 즉 초월자인 신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 인간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Vico는 인간성의 동질성을 근거로 해서 역사세계를 전개해 나갔다. 인간성이란 갑자기 변화하지 않으며, 과거의 관습과 인습을 가지고 있는 연속성속에서 자리잡고 있고, 이러한 관련하에서 역사가는 현재의 과거의 인식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역사과학을 가능케 한다고 하였다. Vico는 역사는 초월적 존재인 신(神)의 창조물이 아니라 인간의 작품이므로 인간의 인식의 세계와 신의 세계와는 너무나 원거리에 있으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의 정신계에서는 인간의 작품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Vico의 역사 인식방법은 데카르트의 인식이론을 뒤바꾸어 놓았다.

(3) 역사순환론

Vico 의 역사관은 "역사순환론"이다. 그의 역사발전은 발전과 몰락의 연속과정이었다. 그에게 고대가 발전이라면 중세는 몰락인 것이다. 그는 지적하기를 역사상의 진정한 발전은 기독교가 유럽에서 형성되었을 때라고 하였다. 순환사관에 의해 그는 역사를 '신들의 세계', '영웅의 세계', 그리고 '인간의 시대'의 3단계로 구분한다. 제 1단계는 신정정치시대로 목가적인 사회였고, 제 2단계는 귀족정치시대로 시적 상상력이 나타난 시대이며 제 3단계는 입헌군주제 또는 공화제시대로 이성의 시대라 하였다.

이 러한 시대는 무질서에서 질서로, 야만시대에서 영웅시대로 그 다음엔 이성적인 시대로의 진보적인 역사를 의미하는 데 이것은 또다시 야만인들의 폭거에 의해 몰락되어 정신적인 문제가 등장했고, 그 자체로서의 반복을 하지만 원래의 출발점으로는 되돌아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반복과정이 Vico가 말하는 신의 섭리라는 것이다.

Vico 가 말하는 '제신의 시대', '영웅의 시대', '인간의 시대'의 시대적 특징은 인간의 정신상태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신의 시대엔 인간의 정신이 아니라 감정의 상태에서 벗어지는 형태로 자연상태이며, 영웅의 시대에는 상상적 지식, 또는 시적(詩的) 지혜로 인간시대는 사회, 법률, 제도, 언어문화가 인간의 성격을 대변해 준다. 이상과 같은 3시대의 구분을 Vico는 역사상에서 구분해 보이고 있는데, 그리스의 호메로스 시대는 영웅의 시대이고, 그 이전의 시대는 야만시대이며, 그 이후 페리클레스시대는 민주주의 시대이다. 로마사에서 공화정시대가 영웅시대이고, 그 이전이 야만시대이며, 그 이후가 (시저시대) 군주시대이다.

(4) 신의 섭리

Vico 는 신의 섭리에 의한 역사의 근거를 취하는 종교적 입장이면서도 역사적 세계는 분명히 인간에 의해서 창조되었으며, 인간성은 어디서나 동일하다라고 하는 관념에 의거하고 있다. Vico에 의한 인간사상의 역사성 인식의 특징은 연속성의 원리와 함께 동일성의 원리였다. 그는 말하기를 역사적 인식이란 현재에서 과거의 재인식이라고 함으로써 역사적 현재의 인식을 지각적으로 파악한 최초의 인물이었다. 즉 시대사상에 대한 인식의 재구성인 것이다.

역 사의 변화는 창조주의 섭리 가운데서, 그리고 입법자의 천재성에 의해서 생긴다고 하는 종래의 관념을 뒤집고 집단정신(Group Mind)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순수한 인간의 심리작용을 제시하였다. 집단정신 이야말로 그가 세운 근세적인 역사진행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역사 발전의 단계란 서로 관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인간 역사의 어떤 시기도 정당한 것이며, 각 시대는 그 힘과 미를 가지고 있으며, 전 시대의 필연적인 결과이자 후시대를 위한 준비기간이라 하였다.

(5) 언어와 신화

역 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언어'라는 것은 특히 중요하다. 극도로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용어를 포함하여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수많은 용어들은 고대인들의 생활방식과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말의 어원에 대한 연구는 이전 세대들이 활동하던 시기의 환경적조건 뿐만 아니라 그러한 환경에 대한 독특한 반응 또한 밝힐 수 있다. 더 나아가 말과 생각은 서로 분리되지 않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언어란 선재(Pre-existent)하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인간이 일부러 만든 인공적인 매개체가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분리 될 수 없는 생각의 발전과정으로 자연히 포함되는 것이다. Vico는 언어와 인간이 묘사하는 형태는 자신의 지식의 발전과 의견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Vico는 또한 현재 우리가 쓰는 말에는 고대의 의미와는 매우 다른 은유(Metaphor)만이 있고, 고대인들은 자신들을 감싸고 있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그래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용어들을 나타냈다고 하는 자신의 가설을 정립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림같이 생생한 이미지, 유추, 애니미즘 숭배 그리고 아이들이 하는 의인화(擬人化)는 생각과 의사소통을 매우 원할하게 하는데, Vico는 이런 행위들을 인간역사에 있어서 시적(詩的) 시기라 불렀다.

이 러한 연관관계에 대해서 Vico는 상대적으로 교양의 수준에 따라 일반적이거나 혹은 추상적인 언어를 쓰는 능력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언어가 사실적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과 의식을 나타내는데 있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오늘날 신화속에서 묘사한 사건들을 단지 엉뚱한 이야기로 간주한다던가, 시(詩)나 회화작품들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나 오락적 요소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현재의 태도를 고대 선조들의 생각으로 간주하지 않아야 한다.

교 양있는 생활을 하는데 없어도 되는 일종의 장식품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면, 시(詩)는인간의 자연스럽고 감정이 넘치는 표현이라고 Vico는 단언했으며, 그밖의 신화나 우화는 인간에게 상상력을 내포하게 하고 진리를 구체화시킨다고 하였다. Vico는 "우화나 전설 또는 신화는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들의 첫번째 역사이다"(유대인의 역사는 성경이므로)라고 썼으며, 우화나 전설등이 정확히 해석된다면 의미심장하고 유익한 것이 될 것이다.

(6) Vico와 Scienza Nuova의 영향

Scienza Nuova는 특이한 이력를 가지고 있다. 독일 작가인 Johann Hamann과 Vico의 사상과 많은 부분이 일치하는 Johann Herder가 Scienza Nuova를 접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18세기 동안 유럽사상가 대부분은 그것을 접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Scienza Nuova에서 제시된 논제들은 너무나 생소한 것이었고, 역사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계몽주의자들이 독특하게 취한 태도에서 너무나 벗어났기 때문에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없었다. Vico의 작품들이 흥미를 끈 시기는 전 시대와는 상이한 지적토양이 지배하였던 독일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19세기에 들어서였다. 영국에서는 Coleridge와 Thomas Arnold같은 작가들에 의해 Vico가 추앙되었고, 그의 작품들이 인용되었으며, 프랑스에서는 역사학자인 Jules Michelet같은 사람들이 열광하였다. Jules Michelet는 Vico를 자신의 스승이라 말하였으며, Vico의 주요 저서에 나오는 문구를 번역하는 작업을 통해 Vico의 주요사상을 알게되었다. 그러나 Vico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답보상태이고, 유럽사상사에서 Vico의 위치는 최근까지도 적절하게 정립되지 못했다. Benedetto Croce와 Collingwood는 Vico 작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앞의 두 인물들은 Vico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특히 Croce는 Vico 사상의 해설자로써 헌신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Vico는 현재까지 다루기 어렵고 특이한 인물로 남아있다. 그의 문체는 모호하고 딱딱한 면이 있고, 그의 견해는 명확하고 날카롭기 보다는 함축적이고, 분명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Vico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천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의 저서나 사상이 광범위하게 알려지지는 않을 것 같다.

출처 : 이범수의 이탈리아 http://my.netian.com/~chic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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